대한축구협회(KFA)가 한국 축구의 신화적인 존재 거스 히딩크 전 감독의 한마디에 다시 휘청이고 있다. 반년 가까이 이어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이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30일 축구계에 따르면, 이임생 기술이사가 갑작스레 사의를 표명한 정해성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을 대신해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을 주도할 예정이다.
KFA 관계자는 “정 위원장이 갑작스럽게 사의를 표명하면서 남은 사람들이 선임 작업을 마무리해야 하는 분위기”라며, “최종 후보 선정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여서 이 기술이사가 전력강화위원들과 미팅을 하며 방향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KFA 관계자는 지난달 28일 엑스포츠뉴스와의 통화에서 “정 위원장이 오늘 KFA 핵심 인사에게 구두로 사의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최근 대표팀 정식 감독을 물색하는 과정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서 자리에서 물러난 것 아니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특히, 정 위원장이 KFA 핵심 인사와 갈등을 겪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임생 기술이사는 지난해 1월 기술발전위원장을 맡았고, 올해 4월부터는 상근직으로 신설된 기술이사를 겸직해왔다. 기술이사는 대표팀 관련 업무와 기술 분야를 총괄하는 자리다. 이 기술이사는 새 대표팀 감독 선임 작업에도 정 위원장과 소통하며 직간접적으로 간여해왔다.
정 위원장은 약 4개월 동안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 3월 A매치에서도 임시감독 체제였고, 6월 A매치 역시 마찬가지였다. 3월에는 당시 올림픽(U-23) 대표팀을 이끌던 황선홍 감독에게 성인 대표팀 감독직을 겸직하게 하면서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판대로 결과는 실패였다. 황 감독은 대표팀 임시 감독을 맡아 태국과의 2연전을 1승 1무로 마무리했으나, 정작 올림픽 대표팀에서는 40년 만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결과를 냈다. 황 감독이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정 위원장은 정식 감독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전력강화위원장 직책을 유지했다.
6월 A매치에서도 대표팀은 정식 감독이 아닌 임시 감독 체제였다. 정 위원장이 1순위로 여겼던 제시 마치 감독이 KFA의 제안을 거절하고 캐나다로 떠났기 때문이다.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는 KFA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수였다. 3월 A매치가 끝나고 KFA는 국내외 다양한 후보군을 두고 협상을 진행했으며, 그중 한 명이 마치 감독이었다. 황 감독도 국내 감독 후보에 있었으나, 올림픽 본선 진출 실패 이후 제외됐다. 정 위원장은 마치 감독과의 협상에 ‘올인’했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결국 마치 감독이 캐나다를 선택하면서 다시 임시감독을 선임하기로 결정했다.
6월 A매치 기간 동안 대표팀을 이끈 감독은 김도훈이었다. 김 감독은 싱가포르와 중국과의 2연전을 모두 승리로 마무리했고, KFA는 그에게 정식 감독직을 제안했다. 그러나 김 감독은 제안을 거절하고, KBS를 통해 대표팀 감독직을 고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정 위원장은 매력적인 외국인 지도자의 경우 연봉 등 현실적인 조건이 맞지 않아 영입이 어렵다고 보고, 홍명보 울산 감독과 김도훈 감독 등 국내 지도자를 선임하려 했다. 그러나 KFA 수뇌부는 외국인 지도자를 선임하기를 원했고, 이견을 보이면서 정 위원장이 물러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레이엄 아놀드 호주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KBS 보도에 따르면, 아놀드는 올해 방한한 히딩크 감독이 직접 추천한 인물로 알려졌다. 아놀드는 2018년부터 호주 대표팀을 이끌며,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호주를 역사상 두 번째 16강 진출로 이끌었다. 현재 2026 북중미(캐나다·미국·멕시코 공동 개최)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서도 호주 대표팀을 이끌고 순항 중이다. 문제는 아놀드의 성과와는 별개로 KFA의 선임 프로세스가 또다시 문제를 일으켰다는 점이다. 히딩크 감독의 한마디에 정 위원장이 준비했던 작업들이 무산된 듯한 상황이 되었기 때문이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여러 위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후보군을 정하고 협상을 진행했으나, 수뇌부는 히딩크가 추천한 후보를 밀어붙이면서 전력강화위원회의 노력을 무시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게다가, 아놀드 감독이 유력한 팀의 감독이라는 점에서 선임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아놀드 감독은 호주 출신으로 유럽 클럽을 지휘한 경험이 없어, 그의 선임에는 여전히 물음표가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