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 난다라는 말이 제 어린시절 이야기를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가는한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중학교 조차 못나오시고 사회로 나와 일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인연이 되어 부부의 연을 맺게 된 부모님은 낮에는 과일과 야채를 파셨고 저녁에는 늦은밤 까지 포장마차를 운영했습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두 분은 바라시던 아이가 생기지 않자, 아이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아 차라리 다행이라고 까지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뒤 한참 후 두분 사이에서 제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당시 다른사람보다 늦은 나이에 임신을 하셨던 부모님은 그만큼 고생도 많이 하셨었다고 합니다.
배 안에서부터 심술쟁이였던 저는 어린시절에도 친구들과 매일 같이 사고를 치며 힘들게 일하는 부모님의 고생을 시키기도 했었는데요.
그러다 제가 중학생이 되었을 무렵 친구들과 거리를 다니다 손님에게 쩔쩔매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친구들과 같이 있어 그 모습이 부끄러웠던 저는 부모님을 모른척 지나갔고 집으로 와 한참동안 그 모습만 떠올랐는데요.
더이상 부모님에게 고생을 시킬수 없었던 저는 성공을 해서 부모님의 고생을 그만보고 싶어 공부를 하기로 결심을 먹게 됩니다.
그렇게 저는 열심히 공부를 했고 부모님 역시 제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죠.
결국 저는 우수한 성적으로 명문대에 입합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확고한 비전과 꿈도 없이 경영학과를 지연하게 되었는데요.
제가 진학하게 된 이유는 고3때 담임선생님의 추천으로 선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선배들과의 술자리에서 펀드매니저라는 직업을 처음 듣게 되었고 당시 대학생새내기 였던 저는 생소한 직업이었지만 당시 현직에서 일을 하고 있던 선배의 설명에 관심이 많이 쏠렸습니다.
무작정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던 저는 큰 돈을 자주 만지고 인센티브 또한 쏠쏠하다는 부분이 너무 큰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저는 펀드매니저의 목표로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경역학 전공이라서 보다 쉽게 준비를 할 수 있었고 이미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증권분석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많은 경험을 쌓은 것이 도움이 되어 증권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연봉부터 제가 만족한 보수였지만 그만큼 업무의 강도역시 강했습니다.
처음이라서 제가 소속된 선배님의 보조를 맞춰 저에게 나온 자료들을 수집과 분석을 하고 잡일을 했습니다.
월급은 넉넉했지만 큰돈을 만지는 선배들과 달리 자료 해석과 수집으로 밤을 새어가며 일을 해야 했습니다.
거기다 실수가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와 매일 분석과 공부로 인해 몸과 정신은 날이 갈수록 지쳐만 갔죠.
그러던 중 선배의 조언으로 일의 스트레스는 저만의 해소 요소고 있어야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게 저는 저만의 방법으로 당시에는 그렇게 대중적이지 않았던 요가를 하게 되었는데요.
천천히 움직이는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집중력을 요구하는 운동이어서 요가를 하는 동안 머리 속에 모든 일과 잡생각이 사려졌고 머리 또한 맑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취미로 시작한 요가 학원에서 지금의 아내인 ‘경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제가 운동하던 시간대에는 직장인 분들이 많았는데 경아 역시 퇴근 후 운동을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눈이 맞아 급속도로 가까워 지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가벼운 이야기부터 시작하다가 서로 직장이 여의도인것을 알아 호감이 있던 경아씨에게 친해지려 노력을 했습니다.
외모도 훌륭했찌만 저와 내면적으로 잘 맞아서 밝은 성격에 끌렸었는데요.
경아씨에게 저는 돌직구 적으로 다가갔습니다.
“저 경아씨 곧바로 집에 가시나요?” , “혹시 내일 주말인데 시간 괜찮으시면 저랑 연극보러 가시지 않으실래요?”라고 물었죠.
경아씨 역시 이런 저의 모습이 마음에 들었는지 몇차례 만남을 허락했고 어느날 저는 경아씨의 집으로 데려다 주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은 마치 주말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저택들이 있는 동네였고 그 중에서도 오래되어 보이고 크기도 상당한 집이었는데요.
경아씨와 이야기해보면서 느낀것인데 경아씨는 원래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이 자란것 같긴 했지만 이정도로 잘사는 집안인줄은 몰랐습니다.
처음 보는 저택의 위압감에 기가 눌렸지만 경아는 사람사는 것 다를 것이 없다며 저를 안심시켰죠.
그 이후로 몇번 집까지 데려다주다 경아의 부모님을 처음 뵙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도 아니고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는게 맞겠다 싶어 깍듯하게 인사를 드리고 짧은 소개와 함께 저의 명함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뒤로 저는 정식으로 식사초대를 받게 되었는데요. 겨우 밥 한번 먹는 자리인데도 긴장이 많이 되었고 다행히도 경아의 부모님은 저를 편안하게 대해 주셨죠. 하지만 문제는 저의 집안문제 였습니다.
“명문대 잘나가는 증권맨이면 부모니께도 기대가 크실텐데, 우리 경아를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네. 그래, 부모님은 뭐하시지?”
“저희 부모님은 과일장사와 포장마차를 하시다가 제가 이번에 편하게 생활하시라고 가게하나 차려드렸습니다.”
“포장마차? 음… 부모님이 고생이 많으셨네..”
“네 안그래도 외아들 키우시느냐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렇구만,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내가 내일 약속있어서 오늘은 이 차만 마시고 그만 마무리 하지.”
처음에는 호의를 배풀어 주셔서 저의 부모님이 그렇게 마음에 안들어 하시는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저의 집안 이야기를 들으신 후로는 안색이 안좋아 지셨죠.
그래도 당시에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 했는데요.
저희는 어느덧 결혼을 하고싶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하지만 경아의 아버지의 반대가 저희의 결혼을 발목잡았습니다.
저는 아버님을 설득해 보았지만 “자네, 그렇게 대단한가? 자네 배경까지 전부 다 바꿀수 있는 사람이야? 결혼은 결국 사람대 사람이 아닌 집안 대 집안이 하는 거야 자네 집안과 우리 집안이 사돈을 맺는 것이 가당키나 하냐 말이야.
경제적으로 차이가 나면 수준이라도 맞아야지. 자네 생각에 뭐 하나라도 맞아 보이나?”
그렇게 저희는 매몰차게 내쫓겼고 저희 부모님 역시 이 소식을 들으시고 경아와의 결혼을 반대하게 되었습니다.
그 미움과 원망은 경아에게로 향해 저희 부모님도 경아가 찾아오면 쫓아내고 말았죠.
하지만 우리는 서로의 확신에 가득차 있었고 그 마음은 더 단단해 졌는데요.
그러던 중 우리 사이에는 뜻하지 않게 아이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탐탁치 않아 하셨지만 아이가 생겼다는 소식에 마음이 조금은 열린것 같았구요.
그렇게 경아네 부모님을 찾아 갔지만 아버님은 “내가 자네 입에서 또 결혼 소리 듣고자 문 열어 준게 아니네.
포기하겠습니다. 그 소리 듣고 싶어서 열어준 거야.”라고 말씀을 하셨죠.
하지만 저는 “아버님. 경아 제 아이를 임신했습니다.
아이까지 가진 마당에 저희 무슨일이 있어도 헤어질 수 없습니다. 어떤 지원도 바라지 않겠고, 집안에 피해가지 않게 행동하겠습니다.
아이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결혼만은 허락해 주세요”
그러자 어버님은 “결국 하다하다 안되니까 너희가 내놓은 해결책인 이거냐? 됐고 결혼 하겠다는 생각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와 연을 끊자.” 라며 정말 냉정한 말씀을 하고 마셨습니다.
결국 경아와 저는 아이를 포기할 수 없어 저희 어머니댁에서 함께 생활하기로 마음 먹었는데요.
그렇게 삶을 살아가던 도중 어느날 아버지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이 들려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뜨셨고 저는 정신적으로 매우 힘든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실수까지 직장에서 하고 마는데요.
결국 회사에서도 저를 더이상 지켜만 볼 수 없다며 회사의 피해를 입힌 저에게 자진해서 퇴사하기를 권했습니다.
저는 어쩔수 없이 인정하고 퇴직금을 받으며 회사를 나오게 되었죠.
저는 그 돈으로 곧바로 지인과 투자전문회사를 차리게 되었는데요.
퇴직을 권유 받고 저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남은 가족들까지 모두 길거리로 나 앉게 하겠구나 싶었고, 처음 하는 사업이었지만 하는 일은 이전과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영업의 능력을 기르면서 쉽지않은 사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업에 매진을 해오던 와중 어느날 아내가 감쪽같이 사라지게 되었는데요.
아침에 출장을 간다던 아내가 밤 늦게 까지 잘 도착했다는 전화 한 통이 없었고 전화마저 받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동이 트자마자 아내의 회사에 전화를 해 아내의 행방을 물었죠.
하지만 놀랐던 점은 아내는 사실 오래전에 회사에서 퇴사를 했던 사실인데요.
너무 놀라 정신없이 멍하게 있던 저는 경찰서에도 신고를 하려해도 가족이 아니어서 신고를 할수 없다고 합니다.
저와 경아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난 탓에 아직 혼인신고도 못한 상황이었던 것인데요.
그렇게 저는 장인어른 댁에 찾아갔고 이 상황을 설명 드렸습니다.
하지만 아버님은 그 말조차 믿지 않으셨는데요. “저번에는 애 때문에 허락해달라 하더니 이제는 하다못해 거짓말까지 하는 거냐?”, “두번 말하게 하지마라 이제 나한테 딸은 없어!”
아버님에게 경아는 이미 내놓은 자식이었고, 저의 설명도 거짓말로 몰아가셨죠.
이와중에 어머니께서는 아내가 다른 남자와 눈이라도 맞아 집을 도망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아내가 떠나고 1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에 저희 어머니도 돌아가시게 되었는데요.
저는 홀로 쓸쓸히 살아갔고 사업은 성공궤도로 올라 어딜가도 대접을 받으며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었지만 사는 것도 재미가 없고 마음이 허하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업파트너사 사장들과 간단히 술을먹고 옛날에 살던 동네에 우연히 가게 되었는데요.
여러 생각을 하며 쪽방촌 골목을 헤매고 있을 때, 아내와 너무 닮은 얼굴의 한 여자가 가로등 밑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어 술까지 깬 저는 아내와 닮은 여자의 뒤를 밟기 시작했죠.
그렇게 뒤를 밟은 끝에 도착했는데 그 곳에서 한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는데요.
“엄마 오늘은 그냥 브랜드치킨 먹으면 안돼? 내 생일이잖아, 엄마~”
저는 그 말을 듣고 아내가 재혼이라도 한건가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내가 문앞으로 나오는데 저와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당신이 여길 어떻게?”
“경아야, 왜 이런곳에 있어? 내가 널 얼마나 찾아 헤맸다고..”
“당신 이러면 나 더 깊은 곳으로 숨어야 해”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거야? 나한테 무슨 설명이라도 해줘야지. 혹시 내가 사업한다고 당신한테 소홀해서 떠난거야?”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어? 그만해. 어서 돌아가줘.”
저는 이대로 돌아갈수 없어 아내에게 자초지종 설명을 더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놀라운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사업에 빠져있으면서 아내에게 소홀했었고 아내는 저의 어머니에게 이런저런 모욕적인 소리와 구박을 받으면서 지냈다고 하네요.
저도 당시 그런 어머니의 행동에 눈치를 차려 어머니를 말려도 보고 했었지만 제 앞에서만 아닌척 행동하시고 어차피 똑같이 돌아올 뿐이었습니다.
아내는 그런 어머니의 시집살이에 못이겨 확김에 집을 뛰쳐 나왔고 그렇게 지금까지 홀로 애를 키우며 지내게 되었다고 한 것이라고 하죠.
아내는 친한친구들에게 돌아가며 신세를 지게 되었고 가지고 있던 돈으로 생활을 이어가던 아내는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속으로 정말 너무 부끄러웠고 울고 싶었습니다.
하루빨리 그 전 아내가 살던 환경까지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어 미친듯이 일에만 매달렸던 것인데 저는 가장 중요한 지금의 아내를 외면해 왔던 것이었죠.
저는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내에게 무릎을 꿇고 자책을 했습니다. 아내는 다가와 일으켜 주었고, 저를 다시 받아 주었습니다.
현재는 아내와 딸과 함께 점점 행복하게 지내려고 노력중에 있어요.
딸은 아직 저를 아빠로 받아드리기가 어려워 하는 것 같지만 차츰차츰 나아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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