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0대 초반의 평범한 회사원이다.
남편은 30대 중반이고 외국계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결혼한 지 5개월 정도 되었는데 서로의 회사 일이 바빠서 아이는 천천히 가지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결혼 전에는 퇴근 후에 혼자 와인바에서 한잔하는 걸 좋아했고 남편도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나보다 오는 빈도수가 적었지만, 가끔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고 점차 만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같은 단골손님이라는 공통점으로 자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가 되었고 1년 정도 교제를 하고 결혼을 했다.
반년 동안에 신혼생활은 정말 행복했는데 얼마 전에 문제가 생겼다. 남편은 업무 관계로 국내외 출장이 정말 많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세심하게 연락을 자주 했고 의심 가는 행동은 일절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은 출장 전날까지 야근했고 집에 오자마자 피곤하다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
항상 남편은 스스로 출장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처음으로 짐 싸는 것을 도와줄까 싶어서 남편의 출장 가방을 꺼냈다.
가방 안에는 서류들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꺼내다 보니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가장 먼저 살펴본 것은 레스토랑의 영수증이었다.
날짜는 지난 출장 일정과 일치했고 업무 관련 접대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려고 했는데, 주소를 보니 여기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내가 알고 있던 출장지와 전혀 달랐고 이때부터 마음속에 의심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다음에는 두 개의 선물이 나왔는데 열어봐도 괜찮을까?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불길한 예감이 들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포장을 풀어보기로 했다.
귀여운 포장지의 내용물은 작은 로봇 장난감이었고 또 다른 선물은 명품의 여성 화장품이었다.
주변 지인 중에 선물할 만한 사람이 없었고 화장품 또한 나를 위해서 준비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남편이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남편의 핸드폰을 살펴보려고 했으나, 비밀번호를 도무지 풀지 못하고 포기를 했다.
그러나 출장 가방에서 나온 의심스러운 물건들은 전부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겨두고 원래 있던 자리에 모두 되돌려 놓았다.
나는 밤새 뜬 눈으로 한숨도 못 자고 인터넷으로 흥신소를 알아보고 상담 예약을 했다.
남편이 워낙 출장도 잤고 선물들의 정체도 의문이기는 했지만, 무엇보다 레스토랑 영수증이 가장 의심스러웠다.
나는 다음날 바로 퇴근하고 흥신소 사무실에 가서 남편의 뒷조사와 다음 출장 일정 동안에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해 달라고 의뢰를 했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한 일주일이 지나고 남편은 2박3일 출장을 갔다.
그리고 흥신소 조사 결과를 전달받았는데 내용이 너무 충격적이라서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다.
우선 남편의 외도는 사실이었다.
불륜 상대는 어린 아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장난감과 화장품 선물은 불륜녀와 아이에게 주려던 것이 맞았고 나에게는 출장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2박3일 내내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나는 머리를 망치로 두들겨 맞은 듯한 충격으로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에게는 더 큰 시련이 남아 있었다.
저희가 남편분의 인적사항을 조사한 결과 서류상으로는 불륜녀가 본처이고 아들은 남편분의 친자로 나와 있습니다.
의뢰인과의 혼인 이력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나는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숨이 잘 안 쉬어지고 기절할 것만 같았는데 직원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기 위해서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었다.
서류상으로 확인된 본처와 아들의 집과 가까운 곳에는 남편분의 부모님도 살고 계시는데 지금까지 전혀 모르셨나요?
남편은 나에게 자신이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 학대를 당하고 힘들게 자랐다고 했다.
그래서 성인이 되기도 전에 집을 나왔고 부모와 자식 간의 연을 끊은 상태라고 했다.
일부러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자리를 잡았고 부모님에게 자신의 존재를 완벽하게 지우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알던 사람들과도 모두 연락을 끊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남편의 친구나 가까운 지인을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시에 괴로웠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것 같아서 나는 자세한 이야기는 거의 묻지도 않았고 이후에도 일부러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이 원하는 대로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혼인신고만 하기로 했었다.
혼인신고서는 남편과 처음 만났던 와인바에서 같이 작성했고 증인으로는 친하게 지냈던 와인바의 사장님 부부가 싸인을 해줬었다.
나는 회사일로 한창 바빴고 혼인신고서 제출은 남편에게 부탁을 나는 바로 인터넷으로 혼인관계증명서를 열람했고 내가 아직도 미혼 상태임을 확인했다.
나는 배신감과 충격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남편은 본처와 아이가 있었고, 나와는 가족이 아니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있었던 게 아니라, 본처 입장에서는 내가 불륜녀였다.
나는 남편과 연애를 하고 결혼 생활을 했던 시간들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깊은 상실감과 큰 절망에 빠지고 말았다.
서류상으로 결혼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혼 과정은 필요 없었지만 나만 이렇게 불행해지는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본처를 만나서 모든 사실을 폭로할 계획을 세웠다.
그때까지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있어야만 했는데 아니 사실 법적으로 남편이었던 적이 없으니 지금부터는 A라고 말을 하겠다.
흥신소 직원이 A 아내는 전업주부로 낮에는 대부분 집에 있다고 알려주었고 수일 후에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직접 만나러 갔다.
현관 앞에서 크게 심호흡을 하고 인터폰을 눌렀고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본론을 이야기했다.
갑자기 방문해서 죄송합니다만 지금 남편분은 한 달에 반 이상은 저와 살고 있습니다.
자세하게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요.
A의 아내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현관문을 열었고 나를 거실로 안내해 주었다.
나는 A와 함께 했던 1년 반 동안의 이를 전부 자세하게 설명했다.
와인바에서 처음 만났을 때 A는 분명히 미혼이라고 했어요.
일 년 교제 후에 프러포즈를 받고 혼인신고를 했다고 믿고 있었는데, A가 저를 속이고 제출하지 않아서 서류상으로는 아무 관계도 아닙니다.
그리고 출장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진짜 아내와 아이가 있는 집을 다니고 있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되었어요.
나는 그동안 A와 찍은 사진들과 동영상을 보여줬다.
A의 아내는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출산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남편은 회사 일이 바쁘다면서 출장과 외박을 자주 했어요.
그러다가 반년 전부터 장기 파견을 가게 되었다면서 아직 아이가 어리니까 저는 친정과 시댁이 가까우니 집에 남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한 달에 한두 번 오는 게 다였고 워낙 일이 많은 회사였으니까.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A의 아내는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울음을 터뜨렸고 일단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날 밤에 에이 아내에게 연락이 왔고 가까운 시일 내에 A를 다 같이 만나서 직접 추궁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출장이라고 속이고 A가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날에 계획을 실행하게 되었다.
A의 아내는 가까이에 사는 시부모님도 오시게 했고 아이는 친정에 맡겼다고 했다.
시부모님은 손자의 부재에 크게 실망을 하셨는데 A의 아내는 차분하게 말을 했다.
사실 오늘은 소개해 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요.
나는 A의 집 근처에서 대기를 하다가 A의 아내 연락을 받고 바로 집으로 갔다.
그리고 안내를 받아서 모두가 모여있는 거실로 향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저는 이 남자와 반년 동안 같이 살고 있습니다.
A의 부모님은 깜짝 놀라시면서도 황당하다는 얼굴이었고 A는 뭔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리고 있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 같았다. 저는 지금까지 A와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최근에 A가 가정이 있는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상황 파악이 잘 안 되시는 것 같았는데 내가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드리자 아버님이 격노하셨다.
너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이야 당장 설명해.
A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싹싹 빌기 시작했다.
잘못했어. 있습니다. 제가 죽을 죄를 지었어요.
A의 한심한 모습에 자리에 있던 모두의 분노가 폭발을 했고 나와 A의 아내 그리고 부모님이 동시에 폭언을 퍼붓기 시작했다.
A는 울면서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았는데 아내가 출산을 하고 아이만 신경 쓰면서 나는 상대해 주지 않으니까.
어쩌다 보니 회사 근처 와인바에 다니기 시작했고, 사람을 만나면서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어요.
그리고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와 사귀면서 결혼까지 유도했고 두 집 살림을 하면서 언젠가는 들키지 않을까?
불안함을 느끼면서도 스릴과 짜릿함에 그만둘 수 없었다는 것이다.
A는 아버지에게 얼굴을 맞아서 코피가 터졌는데 아버지를 말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하루라도 빨리 A와 정리하고 싶었고 급하게 월세집을 구해서 주말에 짐을 전부 옮겼다.
그리고 흥신소에서 변호사를 소개받았고 내가 가진 증거들과 폭로 당시의 녹음 파일로 상담을 했는데 사실혼을 인정받기에는 충분하고 고액의 위자료도 기대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
A는 변호사가 보낸 내용증명을 보고 내가 원하는 금액의 위자료를 전부 지불하겠다고 합의를 했다.
A의 아내는 이혼을 결심하고 위자료와 양육비를 일시불로 지급받기로 했다고 한다.
그리고 A의 회사에 전화를 해서 장기 파견 관련해서 사실 확인을 하는 척하면서 A의 만행을 전부 폭로했다고 한다.
A의 직속 상사에게도 연락을 해서 같은 내용을 전달했고 회사 내에 소문이 퍼져서 여직원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는 것 같다.
회사 내에서 저지른 분류는 아니었기에 퇴사당하는 일은 없겠지만, 보수적인 사내 분위기에 A는 상당히 불편한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A의 부모님은 자식에게 큰 실망을 하고 등을 돌린 상태라고 A의 아내가 전화로 말해주었다.
시간이 흘러서 나는 새로운 생활에 적응을 했고 마음의 상처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었다.
그러나 당분간 연애나 결혼에 대한 생각은 아예 없었고 지금도 가끔 A와 지냈던 시간들이 떠오를 때마다 허무함과 상실감에 분노가 치밀고는 한다.